메뉴 건너뛰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연인, 김현감호설화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1. 경상북도 경주시의 흥륜사에서



신라에 음력 이월이 되면 초여드렛날에서 보름날까지(8일~15일) 흥륜사의 전탑을 돌며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다. 신라 원성왕 8년(792)사월 초파일에 일어난 일이다. 


화랑 김현이 밤 깊이 전탑을 돌고 있었다. 더 시간이 깊어지고, 한 처녀가 염불을 외며 전탑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김현은 그녀를 보았고, 아리따운 그녀의 자태에 반하고 말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 역시 김현에 대한 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그 날 밤 정을 통하게 된다.  

그러나 처녀는 급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김현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녀를 급히 쫓아 서산 기슭의 한 초가집에 도착했다. 


“왜 도망가는 것이오?”


김현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때 초가집에서 한 노파가 걸어 나왔다. 


“따라온 사람이 누구냐?”


처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노파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없었던 일보다 못하게 됐구나.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어쩌겠느냐? 네 오라비들이 오기 전에 은밀한 곳에 숨겨 주어라.”

“무슨 일인데 나를 숨긴단 말입니까?”

“도련님, 우선 저를 따라 숨으시오. 내 잠시 후에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리겠소.”


김현은 영문도 모른 채 처녀를 따라 집 안 구석에 숨게 됐다. 잠시 후 커다란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 거리며 초가집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사람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비린내가 나니 요기를 했으면 좋겠다.”


호랑이의 말에 노파가 크게 꾸짖으며 말했다.


“너희들 코가 어떻게 되었구나. 어찌 미친 소리를 하는 게냐?!”


세 호랑이는 초가집에 들어오려 했고, 처녀는 세 호랑이의 앞을 가로 막았다. 


“왜 이러시오, 오라비들.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소.”

“비키 거라.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확인해 보겠다.”


노파, 처녀, 호랑이가 엉켜 다투고 있을 때, 하늘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쳤다.


“너희들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 좋아하니, 마땅히 한 놈을 죽여 악행을 벌하겠다.”

“만약 세 오라비가 멀리 피해 스스로 뉘우친다면 제가 대신 그 벌을 받겠습니다!”


세 오라비가 크게 근심하자 처녀는 하늘에 대고 외친 것이다. 세 오라비는 크게 기뻐하며 꼬리를 감추고 도망쳐버렸다. 노파는 대경실색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처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김현이 숨은 곳으로 갔다. 


“비록 내 사람이 아니지만, 하룻밤의 맺은 인연은 제게 중요합니다. 세 오라비의 악과 가정의 재앙을 혼자 감당하고, 또 낭군의 손에서 죽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내일 내가 시중(市中)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면 사람들이 나를 처치하지 못할 것이고, 그대 왕이 반드시 큰 벼슬을 주겠다는 현상을 걸고 호랑이를 잡으라. 할 것이니, 그때 낭군은 두려워하지 말고 성북 숲 속으로 나를 쫓아오면, 내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현은 놀라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람과 동물이 인연을 맺은 것은 정상은 아니지만, 우리가 인연을 맺은 것은 천행이었을 것이오. 그런데 어찌 아내를 팔아 죽여서 벼슬을 얻으라 말한단 말이오!”

“저의 명이 본래 짧으며, 하늘의 명령이고, 자기가 소원한 바이며, 낭군의 경사이고, 우리 족속의 복이 되고,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는 다섯 가지 이익이 있으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다만 소원은 절을 지어서 내 명복을 빌어주면 낭군의 은혜는 그 위에 더할 것이 없겠습니다.” 

“딸아이의 마지막 소원이니 꼭 들어주시오.”


다음 날 시중에 맹호가 나타나 많은 사람을 해하였고, 왕이 직접 큰 상을 내걸었다. 이에 김현이 나서 맹호를 쫓아 성북 숲 속으로 들어가니 어제 만난 처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디 어제 밤 우리가 나눈 정을 잊지 말아주시오.”


처녀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김현의 칼을 뽑아 자결했다. 김현은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김현은 시중으로 돌아와 호랑이를 잡았음을 알리고, 처녀가 알려준 치료법으로 호랑이에게 물린 사람들을 치료했다. 이에 김현은 큰 상을 받게 되었다. 


관직을 얻은 김현은 서천 변에 호원사(虎願寺)라 이름 붙인 절을 세운다. 




#2. 만나지 말았어야 할 연인, 김현감호설화




김현감호.jpg

<그림1> 이만익 작가가 그린 김현감호설화를 주제로 한 그림



김현감호설화는 『삼국유사』 권5 효선편 김현감호조에 실린 설화다. 김현감호는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라는 뜻이다. 김현이 죽기 전 이 이야기를 적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사람들은 그 기록을 「논호림」이라 불렀다고 한다. 


김현감호조에는 다른 한 편의 ‘호원설화’(虎願說話)가 더 담겨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신도징설화>다. 신도징 설화의 줄거리를 간략히 기술해보면 이렇다. 


중국 당나라의 신도징이 관리에 임명 되어 가던 중 눈보라를 만나 산 속 어느 초가집에 들어가게 됐다. 신도징은 그곳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처녀를 만나게 되는데 살결이 곱고 아름다웠다. 그 집에서 하루를 묵는 동안 후한 대접을 받고, 처녀와 혼인을 올려 함께 부임지로 간다. 


아내와는 1남 1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몇 년 후 임기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아내의 부탁으로 처가에 들리게 된다. 하지만 처가 식구가 아무도 없었고 아내는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그러다 벽에 걸린 호피를 뒤집어쓰자 호랑이로 변하였고, 그 길로 집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삼국유사에서 두 편의 호랑이 이야기를 함께 남겨 놓은 건, 추측하기로, 선한 범과 인간의 정을 저버린 범을 대비해 선한 범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TAG •
?

Title
  1. 인간사 액운을 막아주는 지장아기

    #1. 동개남상주절의 깊은 밤으로부터   금슬 좋았던 남산국과 여산국 부부는 마흔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리하여 동쪽 산 너머 동개남상주절에 시주를 하고 부처님께 석 달 열흘을 빌어 드디어 딸을 얻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을 지장이라 지었다.  ...
    By늘봄
    Read More
  2. 돌하르방의 권선징악, 녹핀영감

    #1 제주도 바람맞이 언덕 위에서 어느 추운 겨울 날,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지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옷은 여기저기 헤져 그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했다. 그 때 나무꾼은 저 멀리 언덕 위에 서 있는 한 영감을 발견했다. “아니, 영감님. 이 추운 날 여...
    By늘봄
    Read More
  3. 만나지 말았어야 할 연인, 김현감호설화

    #1. 경상북도 경주시의 흥륜사에서 신라에 음력 이월이 되면 초여드렛날에서 보름날까지(8일~15일) 흥륜사의 전탑을 돌며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다. 신라 원성왕 8년(792)사월 초파일에 일어난 일이다.  화랑 김현이 밤 깊이 전탑을 돌고 있었다. 더 시간이 ...
    By늘봄
    Read More
  4. 조광조의 안위를 물은 털사람

    #1. 옛 영남 함양 고을 위성관에서 어느 가을, 영남으로 안찰(按察)을 간 김모는 함양에 이르렀다. 손님을 맞은 향리는 술자리를 만들고 기생을 불러 대접하려 했으나, 이를 다 물리치고 홀로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고 청했다. 덜컹. 밤이 깊은 시간 문이 ...
    By늘봄
    Read More
  5. 불과 아궁이의 신, 화덕벼락장군

    #1. 옛날 제주도 조천읍 와산리 어딘가 “큰딸년아, 내 뒤 귀썰매를 걷어보아라. 어쩐 일인지 귓등에 고랑니(이)가 끓는 듯 가렵구나.” “어머님아, 귓등을 걷어보니 고랑니는 없고 귓밥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 귓밥을 내어다오.” 큰 딸과 ‘검은 땅 밭’에서 ...
    By늘봄
    Read More
  6. 늙은 여우의 심장을 쏜 거타지

    #1 서해 백령도의 어딘가에서 “아, 어찌 곡도(鵠島)에 홀로 남겨졌단 말인가!” 당(唐)나라 사신으로 가게 된 양패(良貝)를 따라 나선 게 엊그제 같은데, 육지에서 멀고 먼 서해 곡도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따라 나서질 말걸. 가만히...
    By늘봄
    Read More
  7. 효자 호랑이 황팔도

    #_1. 옛날 어느 늦은 밤, 충남 보령 도화담 마을 즈음      밤이 깊어 깨어 있는 이 하나 없는 시간, 사내 하나가 마을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이름난 효자였던 황씨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황구(黃狗)의 간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By늘봄
    Read More
  8. 강남 숯내와 동방삭

    #_1. 먼 옛날, 지금의 ‘강남’ 어딘가 흐르는 냇물이 시커멓다. 뭔 일인가 싶어 가보니 한 청년이 숯을 씻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숯을 왜 물에 다 씻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장면을 이상하게 여긴 사내는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
    By늘봄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33길56 | 발행처 : (주)모음플래닛 | DEO & 발행인: 김현청 | 편집장: 민정연
| 사업자번호: 501-86-00069 | 출판등록번호: 제 2015-000078호
| 편집실 전화: 02)585-0135 | 대표전화: 02)585-4444 | 기사제보: brown@moeum.kr | 운영/제휴/광고 문의: red@moeum.kr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