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다니다가 알게 된 분을 통해 소개 받은 어느 농부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벼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어느 날 다급한 목소리로 제게 전화를 하셨지요.
"허참... 여보게, 조실장. 이거 어쩌면 좋을까? ... 쌀이 팔리지가 않네 그려."
"쌀이 팔리질 않아요?"
"작년이랑 똑같이 농협에도 내놓고, 시장에도 내놓았는데, 거의 팔리질 않아."
"뭐 작년이랑 다르게 내놓으신 거 아녜요?"
"똑같지. 상품도 똑같구. 오히려 쌀은 이번게 훨 좋아. 근데 이상하게 팔리질 않네."
"음... 작년이랑 똑같다는 말씀이시지요?"
"응, 같지... 아, 그거 하나 바꿨네. 쌀 포장지."
"쌀 포장지요?"
"그 왜 아는 사람이 쌀포장지를 좀 고급스럽게 바꾸면 잘 나갈거라고 해서... 이번에 새로 찍었지."
"음... 포장지 때문인가? 제가 내려가서 좀 보겠습니다."
다음 날, 전 잘 팔리던 쌀이 전혀 팔리질 않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정을 모두 미루고 부랴부랴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할아버지의 쌀이 팔리질 않는 이유를 알고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말았지요.
할아버지의 새 쌀포대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쌀은 50년간 벼농사만 지은 농부의 피와 땀이 들어간, 좋은 쌀입니다.'
"아이고, 할아버지 포장지 다시 원래걸로 하셔야겠네요. 이 포장지에 쌀을 담아놓으시니 팔리질 않지요."
"이게 왜? 전 것보다 훨씬 눈에도 잘 띄고, 보기 좋은데."
"... 피와 땀이 들어갔다는데, 누가 이걸 사 먹어요! 저라도 안 사먹겠네요."
"... 그게 왜? 그만큼 정성스럽게 키웠다는 건데."
"에이, 할아버지 그건 할아버지 생각이구요. 이 쌀 주로 사는 아주머니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시죠."
"그런가?"
"그럼요. 쌀 씻으면 핏물 나올 것 같고, 땀냄새 날 것 같고, 그렇잖아요.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어갔다'고 하면, 왠지 찜찜해서 손이 안가게 되는 거예요."
"아이고."
할아버지는 크게 당황스러워하셨지요.
그리고, 한걸음에 달려가 원래 쓰던 쌀포대에 쌀을 옮겨 담으셨답니다.
뭐, 쌀은 다시 잘 팔렸다고 하네요.
우리는 소비자들이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거라고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늘 그렇진 않지요.
바로 그걸 이해해야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