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대답을 기다리는 카페 직원의 표정엔 어서 서둘러 주문을 하라는 맹목적인 닦달이 담겨있다.
내 뒤론 한 시가 급해 보이는 서너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서있고,
그들은 스마트폰에 한 번 그리고 나의 뒷모습에 한 번, 번갈아 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아, 뭐 하는 거야..' 누군가의 혼잣말이 내겐 경보음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려온다.
이렇게 앞뒤 할 것 없이 오는 찌릿한 눈치가 날 조급하게 하지만,
사실 난 아직 메뉴판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 하였는걸....
우리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수많은 선택에 놓이고, 신속하게 골라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세상에 좋고, 예쁘고, 맛있고, 멋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름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매번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시간을 꽤 들이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는 주변에서 스스로를 선택 장애 혹은 결정 장애라 칭하는 사람들도 심심잖게 볼 수 있다.
처음엔 '장애'라는 단어가 포함된 게 꺼림칙해 입에 올리는 걸 삼가 왔는데,
이젠 그 단어가 너무 익숙하게 들려 마치 원래부터 있어 온 고유명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햄릿 증후군'은 소위 말하는 선택 장애, 결정 장애와 같은 맥락의 용어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이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에서 착안된 신조어다.
햄릿 증후군을 앓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자신이 선택의 부담을 안게 되는 걸 불편해한다.
이는 선택을 유예하거나 타인에게 결정권을 토스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의 기업들은 소비자의 번거로움과 고민의 시간을 대신 감내하는 대가로 큰 수익을 얻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한 데 모아 보여주는 '직방', '쿠차', '배달의 민족', '여기 어때'와 같은 어플의 약진이
이 사실을 방증한다.
내 취향과 기분을 감별해 그에 알맞은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어플 'mood listener'와 '왓챠' 역시 그 예이다.
지하철에선 '꿀팁'만을 모아 보여주는 콘텐츠 어플 '피키 캐스트' 혹은 'vingle'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좀 더 편리해지고 있고, 좀 더 좋은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 발전의 달콤함을 즐기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권리이다.
하지만, 덕분에 벌게 된 값진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내야 할지 한 번쯤 침착하게 생각해보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신(新) 과제가 아닐까.
선택 없는 인생은 애초에 가능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