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운명은 앞에서 날라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라오는 돌이라고.
운명은 스스로 결정하지만, 숙명은 결국 스스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을 정의할 때, 대부분 운명적이라 말하지만 가끔은 숙명적일 때가 있다.
피하려,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엔 순응하게 되는...그래서 숙명적 사랑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사랑을 색에 비유한다면 숙명적 사랑은 유화 위에 그려진 진한 잿빛
수채화다. 어떤 화려함도 강렬함도 없지만 세월의 인내와 희생을 견디고 그 겉을
벗겨내고 나면 어느 덧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꽃을, 달콤한 열매를 드러낸다.
그래서, 숙명적 사랑은 두렵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첨밀밀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랑은 숙명이란 명제를 담백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 같은 영화이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숙명적 사랑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 될 수 있는 지를 너무나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등려군의 노래를 매개체로 만나 연결되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결국 등려군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숙명적 사랑의 수레바퀴였다.
숙명은 그런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곁에 와 있는...그 어떤 것...그리고 모든 것...
[John Yu]